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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래공수거
인생에 취하면
마음은 백지가 된다.
삶이 만취되면
가슴은 공허를 느낀다.
노을에 물들면
마음은 붉어지고
황혼에 취하면
인생무상을 알게 된다.
삶은 감성적이고 향기롭지 않다
세월은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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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봄바람
몇 점이
대지를 두드리니
화들짝 놀란 꽃봉오리
눈 비비고 일어나는 아침
목을 끌어안는 솔향
앞 내 버들강아지 깡충깡충
도톰하게 곧추세운 대나무
들판엔 아지랑이
땅이 봄에 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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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낮잠을 많이 자면
밤엔 잠을 뒤척이고
밤잠을 오래 자면
새벽을 볼 수 없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면
가정도 나라도 사랑하게 되고
자기가 자기를 미워하면
이웃도 나라도 미워진다
사랑이 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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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간격 춘
졸개 비바람 험상궂게 거쳐 간 오전
오후의 하늘은 겨울인 듯 봄인 듯
청청함을 물고 가슴앓이를 한다.
어느 누가 붓끝에
이런 색감 묻혀 그렸을까,
세상이 평온하고 한가롭기 그지없다
이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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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
거실 창 모서리를 뚫고 들어오는 바람이
시리고 모질다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천근의 머리가 거실 바닥을 치려 할 때
후다닥 고개 들면
벽에 매달린 거울이 히죽 웃는다
뚫을 수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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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미더운 바람이 대지를 두드리니
머-언 샘물이 땅속을 뚫고 오른다
축 늘어졌던 나무도 척추를 곧추세우고
줄기 뻗친 뿌리로 햇살을 모은다
은밀하고 민첩한 뒤 끝에는
눈부셔 바스러지는 기쁨의 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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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엔 섬이 있다
발을 내디딜 수도 있고
못 디딜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사랑과 이별이 있다
잡을 수도 있고
뿌리칠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돈이 있다
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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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5
반이 넘는 인생을
세상에 퍼주고
반이 안 되는 인생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눠 주고 나니
남아 있는 것은
서리 맞은 백발이요
삐걱대며 쑤셔대는
빈 몸 동아리뿐이니
참다웠던 나는 어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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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4
끝없는
방황 속에
하나둘씩 찍어 내야 하는
삶이란 발자취
선명하지도
뚜렷하지 않아도
세월이 흘러가면
잊힐 흔적이래도
건강한 몸 하나
부모님이 주셨으니
이 세상 사는 동안
불평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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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마음을 짓는다
물고기의 삶은 모래알처럼 특이하다.
사람들의 삶도
구름처럼 변화무쌍 각기 다르다.
낚싯바늘에 걸려드는 물고기들은
바늘에 찔리는 통증을 감소하며
몹시 굶주린 배를 채우려다 낚인다
사람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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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며
붉은 해가 청룡과 함께 솟아오른다
뭔가 해 내겠다는 작심삼일 각오의 뿌듯함
한 살 더 먹었다고 슬기로워질 수는 없겠지만
삼백육십오 일의 여백엔 무슨 글을 쓰고 남길까
하루가 아까워 소중히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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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넘기며
무엇이 그토록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을까
섣달 지루한 그믐밤은
온 세상에 함박눈을 쏟아붓는데
북풍한설마저 삶에 지친 듯
산기슭에 걸터앉아 슬프게 울어댄다
일 년의 발자취를 지우기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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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바다는 온 세계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무한하고 넓고 넓은 집이다.
마음이 있고, 마음이 없고, 마음이 맞고,
마음에 와 닿고, 마음을 뺏기고, 마음을 얻고 안 얻고 간에
바다는 모든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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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되기 위해
첩첩 산골
심산유곡 옹달샘이
바다가 되기 위해
괴나리봇짐 하나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낮이고 밤이고
세상과 얽히고설키며
부귀와 공명, 미움과 사랑
유혹 모두 다 뿌리치며
산과 들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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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날의 노인
다섯 권의 시집도 더 읽을 수 있는
천고마비의 가을날
한 노인이 과거 여자의 공간 속에서
마치 자신의 거울을 보는 것처럼
기억의 낙엽들을 주워 모은다
창문 너머로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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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눈물
우리가 일어난 자리엔
켜켜이 쌓여 있던 낙엽이 웃음 짓고
그리움의 체온을 안은 낙엽은
지난 시간의 기억들을 되새기며
가을이란 눈물을 흘린다.
파란 하늘빛 아래
옹기종기 포근했던 낙엽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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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여
젊은이여
너는 늙어 본 적 있는가,
한 번도 늙어본 적 없다면
늙은 사람 비웃지 마라
늙은이도 한때는
너와 같은 젊은 날 있었느니
그때는 우리도 늙을 줄 몰라
기고만장하였건만
어느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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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풍잎들이 신이 내린 수의를 입고
저마다 겸손하게 땅바닥에 누워 있다
눈을 감으면 고향이 보이고
눈을 뜨면 물감이 번지는 계절
갈색 혓바닥에 비늘이 일어나
억새 가슴에 푸름을 밀어내는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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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마지막 날
돌아서는 단풍잎들
저만치서 손짓하는 나무들
멀리 뻗어만 가는
마음 텅 빈
이별, 아쉬움
이별, 슬픔
낙엽이 부르는
나무가 부르는
크낙한 소리
헤어짐의 노래
산천을 울리는데
오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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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죽은 듯 살아 있는 단풍잎들
화사한 미소는 짓지만
이따금 삶의 훌쩍거림이 들려 온다
사라져버리기까진 얼마나 남았을까
그 깊은 속내는 단풍잎만 알 수 있지만
가을은 마지막 향연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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