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루블료프의 1411년 작 ‘삼위일체’

최서영 (모스크바대학 대학원 러시아 미술사 전공, russartchoi@gmail.com)

작성일 : 2018-10-04 18:49


 

종교의 전파는 문맹률와 관계가 깊다. 기독교를 예로 들자면 성경이 있어야 교리의 핵심내용, 예수님의 일대기 등이 왜곡이 없으면서도 빠르게 전해질 수 있다. 러시아 알파벳을 키릴문자라고 부르는 이유도 10세기경 러시아에 정교회를 전파한 선교자들인 키릴형제가 복음과 함께 문자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금속활자가 생겨나기 전, 개인이 성경 한 권을 갖기 쉽지 않고 대중의 문맹률이 높았을 때 성상화는 성경의 역할을 하며 개인의 종교활동 수단으로 기능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1411년 작 삼위일체는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또 그 작자(作者)를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최고(最古)의 이콘 중 하나이다.

 

삼위일체는 그 주제 자체로 러시아 정교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전에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 즉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하나의 존재라는 개념인 삼위일체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가 영토를 넓히고 폴란드와 같은 주변 카톨릭 국가들과 전쟁 및 교류를 하게 되면서 이 삼위일체 개념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스승에게서 도제식으로 그림을 배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성경을 대신해야 하는 성상화로써 그 제작에 엄격한 규범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콘에는 보통 작자의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루블류프는 삼위일체를 묘사할 때 얼굴의 음영과 부드러운 눈빛, 손동작으로 그만의 특별한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그림이 비종교인에게도 흥미로운 이유는 러시아 이콘의 특징인 역원근법을 가장 쉽게 잘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림을 감상할 때 서양 르네상스시기에 고안된 원근법적 거리 묘사에 익숙해져 있다. 원근법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예가 바로 기찻길인데, 서양식 원근법에서는 기찻길이 사다리꼴 모양으로 좁아지면서 멀어지는데 반해, 러시아에서 사용된 소위 역원근법은 이와 반대이다. 이 그림에서 천사들이 앉아있는 의자나 발판은 뒤집힌 사다리꼴 형태로 관객을 향하며 좁아진다. 이것은 사람이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닌, 그림 속 하나님이 사람들을 보고있기 때문에, 즉 관계의 주체가 내가 아닌 성화 속 하나님이기 때문에 역 원근법이 사용된다고 설명한다.

 

신의 개념인 하나님, 신이었다가 인간의 육체가 되었던 예수, 영의 개념인 성령이 개별적이면서도 실은 동일한 존재라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교라는 것은 이성만으로는 온전히 믿을 수 없는 것인 듯 하다. 러시아에서 정교회 신자들은 아직도 이콘화 앞에서 성호를 긋고 이콘에 입을 맞춘다. 600여년 전의 사람들도 이 고요한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삼위일체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동과 평안을 느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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