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같은 모스크바의 지하철역들

최서영 (모스크바대학 대학원 러시아 미술사 전공, russartchoi@gmail.com)

작성일 : 2018-10-29 10:32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관광버스에 몸을 맡기지 않고, 철저히 그 나라 사람이 돼서 어찌저찌 낯선 곳에 찾아 가는 것. 그것이 자유여행의 묘미 중 하나일 것이다. 이에 더해 모스크바에서 지하철을 탄다는 것은 단순히 편리한 교통수단을 체험해보는 것 외의 의미를 가진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역들은 마치 미술관 같다고들 한다. 동상과 모자이크, 샹들리에와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 지하철역마다 각각의 테마를 가진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꾸며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하철 투어는 모스크바에서 하는 이색적인 투어 중 하나로 꼽힌다.

 

겁이 날 정도로 길고 빠른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해 지하세계로 들어갈 때면 50년은 된 듯한 고물 지하철의 요란한 소음과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길게 설치된 은은한 등이 혼을 쏙 빼놓는다.

 

다양한 매력의 지하철역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역은 바로 마야콥스카야역이다. 일반적으로 모스크바의 유명한 지하철역들이 고전적인 바로크 장식으로 고풍스러운 느낌을 내는 반면, 이 역은 시원하게 쭉 뻗은 메탈 기둥들 때문에 어딘지 세련되고 미래적인 느낌이 난다.

 

마야콥스키는 기계와 산업화를 동경한 러시아의 미래주의 시인이자 동시대의 러시아 혁명을 절대적으로 지지한 급진적 예술가인데, 이러한 그의 특성과 역 이름을 매치해 놓은듯 하다.

 

러시아의 지하철은 지금으로부터 약 75년 전인 1935년 처음 개통됐고 이 마야콥스카야 역은 1938년 지어졌다. 그리고 이 지하철역의 미래적인 디자인은 다음해 뉴욕에서 열린 세계 지하철 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했다고 한다.

 

잠시 지상의 이야기를 하자면, 모스크바 중심부에는 모스크바 대학을 비롯해 외무성 건물 등 스탈린이 지은 거대한 고딕 양식의 건물들이 솟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스탈린이 1920년대 미국에 가서 뉴욕의 마천루를 따라잡기 위해 시작된,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건축계획이었다.

 

지상에서 스탈린의 계획은 7채의 고딕양식 건물만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이 마야콥스카야 역은 바로 그 마천루의 본고장인 뉴욕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또 악취로 악명높은 뉴욕의 지하철과 달리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지하철역 투어를 위해 전세계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니, 그야말로 지상에서 실현되지 못한 스탈린의 꿈이 지하에서 실현된 셈이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역들이 핵전쟁을 대비해 방공호로 쓰이기 위해 아주 깊이 파여져 있다고들 한다. 사실은 모스크바 지질층의 특성상 땅을 최소 30여 미터 아래로 깊이 파야했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지만, 실제로 이 마야콥스카야역은 제 2차세계대전 중 독일 공군의 무차별적인 폭격을 피해 시민들의 방공호로 쓰여졌다.

 

사진은 194110월 미군 종군기자 마가렛부케 화이트가 찍은 것인데, 2018년 필자가 찍은 마야콥스카야 역과 똑같은 기둥들이 보인다. 과연 살아있는 미술관이자 역사의 박물관이라 할 만 하다.

 

< 강동·송파 주민의 대변지 ⓒ 동부신문 & www.dongbu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제보 dongbu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