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틀린의 탑

최서영 (모스크바대학 대학원 러시아 미술사 전공, russartchoi@gmail.com)

작성일 : 2018-11-26 14:44

 

트레치아코프 신관은 현대적인 미술관을 표방한 공간이다. 구관에서 느껴졌던 엄숙함과는 달리, 신관은 미술관이 자리해 있는 무제온공원의 활기찬 느낌을 내부에서도 그대로 가져가며 대중들에게 열려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공작 워크숍,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와 아티스트 토크 등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들에서 접할 수 있는 미술관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그 중 세미나, 또 아티스트 토크가 열리는 곳이 바로 이 타틀린의 탑앞이다.

 

현대의 미술관은 광장을 필요로 한다. 작가와 전시기획자, 교수와 저자들은 일반인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지식이 공유되고 이해되기를, 또 일반인의 관점에서 평가돼 새로운 시각을 수용하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타틀린의 탑은 미술관 광장에 놓이기에 적절한 구조물이다. 1920년에 공산주의 국가의 위상을 보여주는 건축물을 제작해 달라는 레닌의 의뢰로 타틀린이 제작한 이 탑은, 본디 이와 같은 조형물이 아니라 소비에트 지도부가 실제로 사용할 건축물로서 기획됐다. 그러나 이 의욕적인 구조물은 당시 러시아의 기술이나 자원으로는 현실화 할 수 없었다. 설계상으로는 당시 고층건물의 대명사였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도 높았을 뿐 아니라, 층마다 다른 속도로 회전하도록 구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마분지와 나무판 등으로 제작되었으며, 일반인들에게 공산주의 정권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한 거리 행진에 이용되며 광장으로 나간예술 작품이 되었다.

 

이렇게 화가·건축가의 상상력이 현실적인 기술을 초월해 도면상으로만 구상된 건축물들을 종이건축이라고도 부르는데, 일반인들의 생각만큼 허망한 장르는 아닌 듯하다. 예를 들어 이 탑도 후대 예술가들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주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있는 백남준의 거대한 TV 타워인 '다다익선' 역시 이 타틀린의 탑을 오마주한 것라고 전해진다(당시에는 미소 대립관계 때문에 소련을 우호한다고 여겨질 수 있는 타틀린의 이름을 제목에 넣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형광등을 활용해 미니멀리즘 구조물을 만드는 미국의 댄 플래빈 역시, ‘타틀린을 위한 기념비라는 제목으로 탑 모형의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여하튼 이 탑은 미술관 전시장 안에 있는 조형이 아니라 열린 공간에 있는 만큼, 가장 많이 매체를 타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필자도 이 곳에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꿀뚜라라는 러시아의 대표 문화방송 채널 광고에 모습이 찍히기 했다! 심지어 이 광고를 반 친구들이 먼저 보고 알려주어서, 같이 영상을 보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재미있는 추억이 있는 작품이지만,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100여년 전 광장과 현대미술관의 광장을 이어주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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