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리오노프의 ‘나무’

최서영 (모스크바대학 대학원 러시아 미술사 전공, russartchoi@gmail.com)

작성일 : 2018-12-13 11:33

 

어떠한 기준으로 전시 구획을 나누고, 여러가지 소장품들 중에 어떤 작품을 시작과 끝에 배치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미술관의 기틀이 되는 문제이자 미술관의 정체성과 결부된 중요한 명제임에 틀림없다. 러시아의 근현대미술이 집대성 돼있는 트레치아코프 신관에는 왜 그 상설전의 시작에 라리오노프의 작품들이 배치돼있을까? 그것은 바로 그가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 계보의 시초이며, 그당시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난 급진적인 예술 운동의 리더였기 때문이다.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의 개혁 직후의 러시아 미술이 서유럽 미술사조의 흐름에 비해 거의 200년씩 뒤쳐졌다면, 20세기 아방가르드시대에는 해외 미술계의 흐름이 러시아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며, 때로는 러시아가 그 변화의 흐름을 선도하기도 한다. 라리오노프의 그림들에서도 역시 인상파 뿐 아니라 동시대의 원시주의, 미래주의 등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트레치아코프 구관의 극사실주의적인 그림에서 벗어나 점점 거칠어지는 붓터치 양상을 보면, 사람들은 이것이 프랑스 인상파의 영향인지를 궁금해 하곤 한다. 하지만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을 그대로 모방하고자 한 러시아 화가들은 러시아미술사를 집필하는 데 있어 두명 정도 밖에 거론되지 않는다. 당시 러시아 미술계는 인상파의 스타일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기보다는 인상파로부터 시작된 미술사의 거대한 흐름, 즉 사물을 세밀하게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는 일종의 미적 강박주의에서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러시아 1900년대 그림들에서 인상파 스타일의 붓터치는 발견할 수 있지만, 인상파적인 주제 -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도시나 교외에서 한가로이 여가를 즐기는 상류층의 모습은 발견하기는 어렵다. 말하자면 르누아르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햇빛을 받아 빛나는 다채로운 색깔의 행복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모습은 러시아 미술작품에서 잘 등장하지 않는다. 19세기 후반까지 사실주의 화가들이 그렸던 어두운 사회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여전히 불행한데, 어떻게 갑자기 행복한 사람들을 묘사한 그림들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사실주의는 물러났지만 이 시기의 그림들 역시 러시아 농민이나 하급관리들을 보여주며 서민적인 모습이 주를 이룬다.

 

라리오노프의 이 1910년작 나무에서도 나무 뒤의 여인들은 우아하게 드레스에 양산, 모자를 쓰고있지만 나무에 가려져있어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그림의 제목부터가 나무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들보다 눈에 띄는 것은 나무 왼쪽 아래에 대각선으로 유머러스하게 툭 튀어나온 개인데, 이 때문에 그림이 서민적이고 일상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이 그림은 라리오노프가 화풍의 변화를 꾀하기 시작할 때의 그림이다, 다음 회차에 그가 주창한 급진적인 화풍인 루치즘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마침 현재 트레치아코프 미술관 신관에서는 라리오노프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프랑스 퐁피두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들이 소장하고 있는 그의 그림들을 다시 빌려와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전시는 내년 120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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