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술 거장 ‘칸딘스키’

최서영 (모스크바대학 대학원 러시아 미술사 전공, russartchoi@gmail.com)

작성일 : 2019-03-04 15:11

 

러시아 미술이라는 거대한 흐름보다 칸딘스키라는 거장의 이름이 갖는 힘이 더 크다고 느낄 때가 있다. 2007년 말 예술의 전당에서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이라는 전시회가 열렸던 것을 기억한다. 국내에는 생소했던 러시아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들 54명의 작품 91점이 소개된 전시였다. 당시에도 대단한 컬렉션이라 느꼈지만 러시아 현지에서 러시아 미술사를 배우고, 러시아 내 미술관들을 다녀 보니 당시의 그 전시가 정말 러시아의 국보급 작품들을 끌어모아 온 기획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전시회에서 문제된 것은,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이라는 제목을 하고서는 칸딘스키의 작품이 4점밖에(그것도 유명하지 않은 구상작품과 습작을 포함해) 없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칸딘스키의 추상화가 다른 거장’ 50여명의 대표작들보다 사람들의 많은 기대와 관심을 받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왜 칸딘스키의 그림을 사랑하는가? 칸딘스키는 우리가, 즉 평범한 동시대인이 생각하는 예술가에 가장 근접한 이미지인지도 모른다. 그의 그림은 창조적이고 선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심미성을 가지고 있다. 칸딘스키는 1910첫번째 추상화(First abstract painting)’ 라는 부제의 작품으로 눈앞의 대상을 묘사하지 않는 추상이라는 파격을 미술사에 도입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여타 아방가르드의 실험적, 파괴적인 작품들과는 달리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

 

이는 칸딘스키의 예술론과도 관련이 깊다. “색채는 건반이고, 눈은 망치이다. 영혼은 많은 줄을 가진 피아노다. 예술가란 그 건반을 이것저것 두들겨 사람들의 영혼을 진동시키는 사람이다는 칸딘스키의 말은, 그가 색채의 조화를 통해 관람객의 영혼을 울리고자 한 연주자이자 지휘자였음을 짐작케 한다.

 

오늘 소개하는 구상7’은 트레치아코프 신관이 자랑하는 소장품 중 하나이다. 칸딘스키는 1913년 독일 뮌헨에서 이 구성 7’을 그린 이후, 1차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러시아로 귀국하게 된다. 이후 그는 전쟁의 충격으로 러시아에서 구성시리즈의 제작을 멈추고, 거의 10년이 지나 1923년에 완성된 구성8’구성7’과 완전히 다르게 절제된 기하학적 형태로 이뤄져있다. 당시 말레비치를 필두로 기하학적 추상이 유행하던 러시아 화단의 영향을 받아 칸딘스키가 새로운 추상의 기법을 시도한 것으로 보여진다.

 

칸딘스키는 모스크바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비교적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필자도 모스크바대학 미술사학부에서 공부했으니, 칸딘스키의 후배가 되는 셈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모스크바라는 도시가 칸딘스키에게 어떤 울림을 주었는지, 일명 모스크바 시기라고 분류되는 칸딘스키의 작품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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