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각형 아래 무엇이 있을까?

최서영 (모스크바대학 대학원 러시아 미술사 전공, russartchoi@gmail.com)

작성일 : 2019-03-26 07:56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서, 그 부드러운 미소를 한참 쳐다본 일이 있는가? 네덜란드로 날아가 진주귀고리 소녀의 신비로운 눈동자와 눈을 맞춰본 적은? 세계 각지의 미술애호가들은 오직 하나뿐인 원본을 보기 위해 10여 시간을 비행하고, 3시간동안 미술관 입장 대기줄에 서서 기다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모스크바 트레치아코프 신관에도 그런 그림이 있다. 관람객들은 말레비치의 검은사각형(1915)’ 앞에서 쉽게 발을 떼지 못한다. 여인의 눈동자나 손짓도 아닌 그저 검은 사각형을 보러 사람들은 그곳에 온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이 미술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캔버스 바깥의 자연물과 단절된 회화의 세계를 가장 순수한 조형 형태와 색깔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말레비치는 본인의 절대주의를 회화의 사실주의라고 평한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은 그의 회화에 있어서의 절대주의 선언의 포문을 연 시작에 불과하다. 이후 작가는 빨간색과 같은 원색, 원이나 십자가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기하학을 통해 절대주의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리고 1918절대주의 구성 : 흰색 위의 흰색으로 절대주의 실험을 종료하게 된다.

 

소련의 전위미술은 스탈린에 의한 공산주의의 전제화 따라 명맥이 끊기고, 많은 예술인들이 도망치듯 해외로 이주했다. 러시아 미술계 디아스포라 중 샤갈이나 칸딘스키 같은 이전부터 서유럽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 온 작가들은 이후 대중의 인식 속에서 러시아계 작가라는 뿌리가 희미해지게 된다. 그러나 말레비치의 경우는 이들과 여러모로 다른 길을 통해 유럽미술에 족적을 남긴다.

 

우선 그는 철저한 러시아 화가이다. 키예프와 모스크바에서 미술 교육을 받고 러시아화단에서 활동하면서 세잔의 후기인상주의, 큐비즘, 입체미래주의, 신원시주의를 모두 거쳐 자신만의 이론인 절대주의를 탄생시킨다. 즉 미술이론을 학습한 시기부터 활발히 창작활동을 하던 과도기, 작품세계의 완성기까지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의 발전과정과 함께 한 것이다.

 

절대주의 선언으로 러시아 화단의 수장이 된 그는 이후 공산 정부에 의해 사실주의 그림을 강요 받다 1935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한다. 그렇게 러시아 내 정치논리에 의해 사라질 뻔한 절대주의는 독일에서 그의 저서 절대주의 선언이 출판되면서 관련 전시와 연구가 이뤄졌으며 결과적으로 절대주의라는 순수추상주의 선언이 유럽미술제도권에 존재할 수 있게 됐다.

 

20세기 초반 전 유럽을 뒤덮은 아방가르드 열풍은 모든 관습적인 시각과 구태의연한 것들로부터의 단절을 선언했다. 말레비치의 대담한 철학을 담은 캔버스의 하얀 배경색은 세월에 바랬으며, 작가가 고뇌하듯 두텁게 덧칠한 검은 물감도 사막처럼 갈라졌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불그레한 물감이 드러난다. 어쩌면 사람들은 검은 사각형 아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그림을 쳐다보는 건지도 모른다. 복원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트레치아코프 미술관에서도 검은사각형 아래 있는 그림과 글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의미있는 연구를 통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에 담긴 철학이 21세기에 새로 태어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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