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아방가르드 화가들

최서영 (모스크바대학 대학원 러시아 미술사 전공, russartchoi@gmail.com)

작성일 : 2019-04-27 17:04 수정일 : 2019-04-27 18:52


 

미술관 바닥에 놓여진 안경을 관람객들이 현대미술 작품인 줄 알고 사진 찍다가, 그 안경을 분실한 관람객이 다시 와서 주워갔다는 일화가 있다. 안경을 사진 찍던 관람객들은 퍽이나 머쓱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관람객들이 평범한 안경을 미술관이 디스플레이한 작품으로 받아들였다는 반증이기도 하니 100여년에 걸친 전위예술가들의 실험이 헛된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만큼 현대미술작품이라는 것은 일상적 사물과의 경계가 모호하다. 이는 수천년간 회화와 조각으로만 분류됐던 시각예술의 범주가 개념적으로 확장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확장을 시도한 사람들이 전위예술가, 흔히 말하는 아방가르드 화가들이다.

 

오늘 소개하는 타틀린은 안경처럼 사물 그 자체는 아니지만 날것의 재료를 러시아 화단으로 들고 들어온 파격적인 작가이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인 유명세는 없지만 미술사 전공자들은 한 번씩 훑고 지나가게 되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진두지휘자 중 한명이다. 타틀린은 화가의 의지가 재료의 본래적 물성에 반할 수 없다는 본인만의 철학을 역부조(Counter Relief) 시리즈를 통해 구체화한다. 철제는 그 특유의 유연하게 가공되는 특성을 이용해 얇게 구부리고, 딱딱한 나무판은 최대한 가공하지 않은 형태로 조합해 하나의 작품을 구축해낸다.

 

당대 러시아의 필연적 시대정신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단언할 수 없으나 러시아혁명 이후의 공산정권 또한 유물론을 주장하며 물질의 가치에 주목하지 않는가? 물질성에 대한 주목과 모든 것을 전복시키는 혁명 - 이러한 시대적, 정치적 흐름을 타고 타틀린은 러시아 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뗄 수 없는 러시아 구축주의의 선구자가 된다.

 

타틀린의 역부조 시리즈의 단초가 되는 것은 피카소의 콜라주 작업이다. 1913년 타틀린은 피카소의 파리 작업실을 견학하기 위한 여비 및 체재비를 마련하기 위해 유랑 악단에서 반두리스트(우크라이나 전통 기타인 반두라 연주자)로 활동하기도 한다(예나 지금이나 예체능 분야는 제1세계로의 유학이 필수인 것 같다). 피카소의 작업실에서 사물 구성작업의 아이디어를 얻은 그는 14, 15년 전시에서 역부조 작품을 전시하며 러시아 화단 새 흐름을 이끌게 된다.

 

지금 소개하는 그림은 1917년 작 역부조인데, 모스크바 트레치아코프 신관에 전시된 작품 중에서 작품 선정을 하다 보니 한정적으로 작품을 고르게 됐다. 사실 타틀린 작품의 백미는 이렇게 평면 벽에 설치된 역부조가 아닌, 모서리에 설치된 역부조들이다. 그는 물감, 석고 같은 전통적인 예술재료로 작업을 하지 않고 철, 유리, 밧줄같은 실재적인 공업재료들로 작업을 했으며, 이를 의외적 공간에 배치한다. 회화가 걸리는 벽면이나 조각이 위치한 좌대가 아닌 실재적 공간 모서리에 작품을 설치한것이다. 그의 작품은 미술품을 구경하러 온 관람객들에게 미처 지각되지 못한 현실적인 공간에 설치됨으로써 새로운 인식의 매개체로 작용한다. 오늘날 설치미술, installation이라는 용어가 범람하고 있다. 모든 미술 작품이 설치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시대에 100여년 전 러시아화단의 혁명가 타틀린이 첫 설치작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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