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코프 ‘총기병 처형의 아침’

작성일 : 2018-04-24 13:42


 

지도자의 개혁은 역사에 단 한 줄로 기록되지만, 당시 민중들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는 혼란의 시작이었다. 18세기에 시작된 표트르 대제*의 개혁은 러시아의 유럽화를 목표로 했다.

 

표트르 대제는 유럽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북서쪽 늪지대에 유럽으로 향한 창인 해양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수도 이전을 감행했다. 기념비적인 역사화들을 그려 낸 수리코프가 묘사한 총기병 처형의 아침,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인 1698년에 붉은광장에서 일어난 황제와 민중의 대립이며, 유럽과 러시아의 충돌이다. 표트르 대제가 군의 신식화를 위해 군대를 개혁해 군인들의 불만이 쌓인 와중에 황실의 왕위다툼 문제에 정치적으로 휘말린 총기병들이 폭동을 일으키게 된다. 이에 표트르 대제는 격노해 약 2,000여명의 총기병들을 사형시킨다.

 

수리코프가 활동한 19세기 후반에 화가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주제는 러시아의 민중들의 삶, 그리고 민족 정신이었다. 수리코프 역시 소수의 귀족들이 아닌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들이 러시아다운 것의 근간을 이룬다고 보았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사상을 가진 화가가 약 2,000여명의 병사들을 처형하고 유럽식 개혁을 감행한 황제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졌는지는 그림에서도 잘 드러난다.

 

귀족들과 함께, 말 위에서 총기병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표트르대제는 그림 후면으로 물러나 있다. 전면의 총기병들은 붉은 광장의 처형대 앞에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총기병의 가족들로 보이는 통곡하는 젊은 여인, 슬픔에 잠겨 있는 노파, 그리고 한 아이는 권력자의 명령으로 인해 파괴된 백성들의 삶을 보여준다. 그림의 왼편에 희망을 상징하는 촛불을 들고 황제를 노려보는 수염난 병사가 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기상을 지녔고 이는 수리코프가 보여주고자 한 민중의 모습이다.

 

외국인으로서 이 그림을 보면, 300년 전 붉은 광장의 전경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 대해 놀라게 된다. 다만 붉은 광장의 화려한 볼거리들과 바실리 성당 앞에 모여 있는 관광객들로 인해 아직까지 잘 보존돼 있는 이 처형대는 그냥 지나치기 일쑤이다.

 

실제로 트레치아코프 미술관 안내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분들에게 붉은광장에서 이 처형대를 보셨냐고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 그림 설명을 하고 난 이후 한 손님은 여행 마지막 날 이 처형대를 보고자 일정을 바꿔 다시 붉은광장에 가셨다며 메세지를 남겨 주셨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차이가 크다. 어디를 가든 문화, 역사, 관광이 한 데 어우러질 때 더욱 기억에 오래 남고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이자 최초의 황제이다. 그가 즉위할 때에는 군주의 러시아식 표현인 차르를 썼지만, 유럽 황실문화를 지향한 그는 재위 중 황제(임페라토르) 라는 명칭을 정식으로 차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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