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코프의 ‘대귀족 부인 모로조바’

작성일 : 2018-05-10 12:50

 

주인공의 이름이 그대로 작품 제목이 됐다. 수리코프의 기념비적인 역사화 대귀족 부인 모로조바17세기 중엽 일어났던 러시아 종교개혁의 현장을 그리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의 종교개혁은 강제성을 띤 위에서부터의 개혁이었다. 당시 러시아에는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던 정교회 예법을 정통 비잔틴식으로 다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이는 차르에게 받아들여졌다. 이에 찬성하는 측은 신교도, 러시아적 전통을 중시해 현재 예법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측이 구교도이다.

 

그림의 모로조바 부인은 손가락 두개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있는데, 이는 그녀가 구교도임을 의미한다. 성호를 그을 때 손가락 2개를 사용하느냐, 3개를 사용하느냐는 이 종교개혁에서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그리스정교회에서는 손가락 3개를 사용하는데, 러시아에서는 2개의 손가락으로 성호를 그어왔던 것이다. 개혁정책에 따르지 않고 본인의 신념을 굽히지 않아 그녀는 쇠사슬에 묶여 호송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로조바 부인은 17세기 러시아에서 왕족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계급의 귀족신분이었다. 신교도들이 대부분 왕족과 귀족들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대귀족부인의 분리파 지지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끌려가는 모로조바 부인의 왼쪽으로는 다른 귀족들이 그녀를 비웃고 있다. 오른쪽에는 구교도인 러시아 민중들이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귀족부인을 걱정과 두려움에 찬 모습으로 또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구교도들이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와중에 바닥에 헐벗고 앉아있는 거지꼴을 한 남자만이 담대하게 손가락 2개의 성호로 화답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에만 있는 독특한 선지자 캐릭터로, 영어로는 Holy Fool, 성스러운 바보라고 불리웠다. 이들은 일부러 겨울에도 헐벗은 채로 맨발로 다니고, 스스로의 목에 무거운 쇠사슬과 자물쇠를 채운 채 고행을 한다. 이 성 바보는 러시아 문학 작품이나 다른 회화에도 진리를 설파하고 다니는 인물로서 종종 등장한다. 선지자와 같은 인물을 구교도의 편에 배치함으로써 200년 후의 민족주의자 수리코프가 러시아 전통에 따르는 구교도를 지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종종 트레치아코프 미술관 가이드를 하는데, 최근에 안내했던 분이 푸틴의 어머니가 구교도일 것이라는 야담(?)을 비밀스럽게 말해 주셨다. 현재 러시아 정교회 공식적으로 3개의 손가락을 사용하고, 성당에서 보았던 사람들도 3개의 손가락으로 성호를 그었던 것 같은데, 아직 구교도가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신기하기만 하다. 그럼 푸틴도 구교도의 전통을 따르는 것일까? 궁금하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아무튼 러시아 성당에 가면 사람들이 성호를 긋는 것을 다시 한 번 관찰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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