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사계’, 겨울

작성일 : 2018-05-31 11:24

 

지난 겨울 우리나라에 매서운 한파가 몰아 닥치며 서울, 모스크바보다 추워...’라는 제목의 뉴스 기사들이 종종 보였다. 이렇듯 러시아는 흔히 추위의 대명사와 같이 여겨지지만 모스크바는 우리나라처럼 매서운 바람이 불지 않아 한국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춥지는 않다. 그러나 추위보다 힘든 것은, 겨울이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지리하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햇빛 없이 구름 낀 낮은 하늘, 그리고 눈 덮인 자작나무숲은 러시아 겨울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사브라소프의 1871년 작 돌아온 까마귀들은 러시아 겨울의 끝자락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저 멀리에는 구름이 껴 있지만 가까운 언덕 위에는 반짝 해가 난 듯 청명한 하늘색이 조금 보인다. 따듯해진 날씨와 햇빛에 자작나무 근처에는 눈이 녹아 물웅덩이가 생겼다. 언덕 아래 보이는 풍경에서도 눈이 녹아 진흙탕이 된 땅과 나무의 앙상한 가지들이 보인다. 봄이 오기까지 꼭 거쳐 가야 하는 이 시기는 다소 황량하고 우중충한 느낌이다. 결코 예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눈이 녹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이 조용한 풍경 속에 사람보다 먼저 봄을 예감하며 돌아온 까마귀들만이 한 철 살 집을 짓느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자작나무 밑에 한 마리 까마귀가 작은 나뭇가지를 물고 있는 모습이 귀엽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19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러시아 화가들은 문명의 선진국 서유럽의 도시들 - 영원한 영웅들의 도시 로마, 또는 베네치아를 주제로 이국적인 풍경화를 그렸다. 때로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지어진 화려한 프랑스식 궁전들을 담은 풍경화를 그리기도 했다. 19세기 중반에 들어서 화가들은 비로소 러시아의 소박한 풍경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브라소프는 이러한 러시아적 풍경화 장르를 새롭게 연 사람이다. 그의 풍경화에는 사람이 없지만,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람들은 언덕 밑 목조 주택에서 차를 마시다 잠깐 나온 햇빛을 맞이하러 산책을 나온다. 그러다가 어느새 고인 물웅덩이들을 보면서 봄이 오는 것을 느끼며 미소짓는다. 그리고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교회 성당에 들어가 성호를 그으며 성화에 입을 맞출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31일이면 봄이 온 것을 축하해!’ 라고 서로 인사를 나눈다. 하지만 4월에도, 때로는 5월에도 변덕스러운 날씨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듯 진눈깨비 같은 눈을 내리기도 한다. 사브라소프의 돌아온 까마귀들에 담긴 풍경은 뜨거운 여름 햇빛에 살갗을 태우기 좋아하는 러시아 사람들이 사랑하는 풍경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의 사색적이고 멜랑콜리한 정서와 가장 닮아 있는, 가장 러시아적인 풍경이다. 이들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조용하고 묵묵하게 봄을 기다린다. 일주일 내내 눈이 와도 화내거나 불평하지 않고 다만 10여분의 햇빛에 감사한다. 오늘 눈이 녹은 자리에 내일 또 얼음이 얼고, 그 위로 또다시 눈이 덮여도 결국에는 돌아올 따스한 봄을 다만 하루하루 살아내며 기다리는 것이다.

 

 

< 강동·송파 주민의 대변지 ⓒ 동부신문 & www.dongbu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제보 dongbu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