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여름- 쿠인지의 자작나무 숲

최서영(russartchoi@gmail.com)

작성일 : 2018-07-06 10:12


 

트레치아코프 구관의 풍경화들 중 러시아의 여름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림은 쿠인지라는 화가 1879년 작품인 자작나무 숲이다. 러시아는 명실상부 겨울의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의 짧은 여름은 더욱 아름답고 찬란하다.

 

겨울에는 햇빛을 보지 못하고 며칠이 지나버리는 일도 허다하지만, 구름 한 점 없는 여름날의 햇빛은 얼굴이 따가울 정도이다. 실내에서도 썬크림을 발라야 한다고 강조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러시아에는 양산이라는 개념이 없다. 필자가 양산을 들고 지하철을 탔을 때, 사람들이 지금 밖에 비가 오냐고 물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 정도이다.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공원이나 강가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영복 차림으로 태닝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쿠인지의 자작나무 숲에는 이러한 러시아의 강렬한 여름 햇빛 인상이 잘 드러나 있다. 자연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풍경화의 장르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대부분은 나무 그림자 속에 묻혀 있다. 나무 그늘 아래의 풀밭은 검푸른 초록색으로 묘사됐고, 햇빛을 그대로 받는 풀밭은 형광색이 느껴질 정도로 밝은 연둣빛을 띄고 있다. 강렬한 햇빛을 반사해 내는 듯한 나무 기둥 한쪽 면은 자작나무 본연의 하얀색으로 빛난다.

 

쿠인지 그림이 러시아 미술사 내에서 의미가 있는 이유는 모방자로서 화가가 아닌, 창작자로서 화가의 자의적인 해석이 돋보이는 화풍 때문이다. 쿠인지는 19세기 말 당시 러시아 화단에 지배적이던 사실주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기 않았다. 캔버스를 밖으로 가져가 그림을 그리기 보다는 스스로의 기억과 인상에 새로운 자연의 분위기를 창조해 냈다.

 

그의 그림은 러시아에서 장식적이라는 형용사로 정의된다. 그 이유는 디테일한 사실 묘사가 생략될 정도의 대범한 색깔의 사용, 또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 때문이다. 실제로 이 자작나무 숲뒤편의 자작나무들은 거의 하나의 녹색 덩어리들로 표현됐다. 쿠인지는 빛의 표현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화가였다. 그의 화풍은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빛과 색채의 아름다움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그림 앞에 몰려든 사람들은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빛의 표현 때문에 그림 뒤에 조명이 있는지 벽에 붙어서 확인해 볼 정도였다고 하니, 가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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