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가을- 레비탄의 ‘황금빛 가을’

최서영(russartchoi@gmail.com)

작성일 : 2018-07-22 17:07

 

입장하면 2층부터 관람이 시작되는 트레치아코프 미술관은 1층으로 내려갈 때쯤 되면 다리도 아프고, 길도 복잡해서 이콘이 있는 방만 보고 미술관을 빠져 나와 버리기 쉽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1층을 자세히 둘러보면, 마치 선물처럼 레비탄의 풍경화들이 가득한 방을 만날 수 있다. 역사화들이 아무리 아름답고 웅장할지라도 그 나라 사람들에게 와닿는 만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같은 의미를 가지지는 못할 것이다.그러나 잘 그린 풍경화는 국적과 시대를 초월해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를 사로잡는다.

 

나는 누군가가 러시아의 풍경화가를 한 명 꼽으라고 한다면 이삭 레비탄을꼽을 것이다. 그는 어딘지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그림들을 그려낸다. 그가 그려내는 풍경은 서정적이고따듯하면서도 어딘지 쓸쓸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레비탄은 황금빛 가을’, ‘늦가을’, ‘가을날등 유독 가을을 주제로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우리나라에서 가을 바람에 잘 익은 벼들이 일렁이는 논밭을 황금들판이라고 묘사하는 것처럼, 러시아에서도 가을을 묘사할 때 황금가을(Gold autumn) 이라고 표현한다. 러시아 전역에 분포하는 자작나무 이파리들이 노랗게 단풍이 들기 때문에 러시아의 가을은 전체적으로 노란빛이다.

 

요즘 사람들이 모이면 더운 날씨를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사계절 중 봄,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만 남는 것 같다며 한탄하고는 한다. 러시아는 원래부터도 봄 가을이 짧은 나라다. 봄에는 곧 다가올 여름에 대한 기대감이 있지만, 가을에는 여름이 가고 혹독한 겨울이 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다.러시아에서는 어른들도 아이들도 공원을 산책하다 예쁜 떡갈나무 이파리를 주워 책갈피로 만들고는 한다.

 

레비탄의 그림이 한국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사실주의와 인상파의 경계에 있는 듯한붓터치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에서 코로빈과 같이 초기부터 빠르게 인상파를 표방한 화가가 있었는가 하면, 사실주의 화풍을 견지한 화가들도 많았다. 그러나 인상파적인 화풍은 이미한 때의 유행이라기 보다는 화가의 자의적 해석으로 그림을 그려도 된다는 의미에서 미술계의 범세계적인 거대한 흐름이었다.

 

레비탄의 황금빛 가을1985년 작으로 다소 흐릿하고 붓 결이 살아있는 인상파적인 느낌의 그림이다. 그의 또다른 작품인 맑은 가을날은 그림 호수를 위한 습작인데, 이 그림은 가로로 쓱 그은 굵은 선들로만 이뤄졌지만 가을의 청명한 하늘과 호수, 그리고 황금빛 들판의 이미지를 잘 전달해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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