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람스코이의 미지의 여인

트레치아코프 미술관의 여인들 시리즈1.

작성일 : 2018-09-05 18:57

 

최서영 (모스크바대학 대학원 러시아 미술사 전공, russartchoi@gmail.com)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들여다보듯, 한 세대를 풍미한 화가들도 그들이 사랑하는 여인들을 화폭에 담았다. 여인의 초상화 하면 생각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여체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킨 르누아르의 목욕하는 여인들 시리즈는 인물화라는 장르의 한계에 국한되지 않고 수 세기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체의 풍만함과 아름다움을 자유롭게 그려낸 프랑스 화단과 달리, 엄격한 러시아 화단의 분위기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트레치아코프 미술관에 여자 누드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은 아마 회화 자체가 성서화인 이콘의 전통에 기반했으며 서유럽식 초상화의 도입과 발달이 늦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술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잔잔하게 눈길을 끄는 여인들을 만나게 된다. 크람스코이의 1883년 작 미지의 여인은 신비로운 분위기로 관객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크람스코이는 이 그림의 제목을 미지의 여인으로 정하고, 이 여인에 대한 단서를 일기나 메모 등 어디에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여인이 바로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카레니나의 주인공 안나일 것이라는 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19세기 중반 이후 러시아에서는 문학을 비롯해 미술, 음악 등 문화 예술이 꽃피었고 지식인들 간의 문화교류가 활발했다. 크람스코이는 특히 톨스토이와 각별한 사이였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1873년 시작해 77년부터 신문에 기고하기 시작했으므로 크람스코이가 이 그림을 완성한 때와 시기적으로 비슷하다. 실제로 영미판 안나카레니나 뿐 아니라 우리나라 민음사에서 출판된 안나 카레니나도 표지 그림으로 이 미지의 여인을 채택해 사용하고 있다.

 

풍성한 깃털의 프랑스식 모자, 모피와 벨벳, 그리고 새틴 리본이 어우러진 고급스러운 코트..관람객들이 벨벳과 가죽과 모피, 깃털의 촉감을 모두 다 다르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게 묘사된 이 그림은 19세기 당시 러시아 상류사회의 예복을 보여주는 그림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그림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여인의 복잡한 심경을 담은 눈동자에 있다. 마차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 속에는 미녀 특유의 교만함과 자신의 사랑과 운명의 결말을 예견한 듯한 처연함이 어우러져있다.

 

안나카레니나는 흑발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미녀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안개 낀 거리를 걷다가 이러한 눈동자와 마주친다면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그녀가 멀리 사라질 때 까지 한참을 지켜볼 것만 같다.

 

< 강동·송파 주민의 대변지 ⓒ 동부신문 & www.dongbu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제보 dongbu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