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 공주의 주인공 나제쥐다이

작성일 : 2018-09-14 17:05

 

최서영 (모스크바대학 대학원 러시아 미술사 전공, russartchoi@gmail.com)

 

오늘 만나 볼 여인은 화가 브루벨이 1900년 완성한 그림 백조 공주의 주인공 나제쥐다이다.

 

사실주의 그림들이 가득한 트레치아코프 미술관 2층을 걷다 보면 갑자기 환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듯한 브루벨의 방으로 들어서게 된다. 19세기 중반 이후 러시아 화가들은 민중 곁에서 그들의 고단한 생활상을 낱낱이 묘사했다. 때로는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며, 풍경화조차도 평범한 농민들의 희노애락이 담겨있는 소박한 자연을 그려냈다. 이러한 사실주의 시대를 지나 20세기가 될 무렵, 상징주의의 시대가 도래했다.

 

상징주의 화가들은 지상의 현실이 아닌 신화, , 죽음과 사후세계를 비롯한 환상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브루벨 역시 셰익스피어의 희극 햄릿의 주인공인 햄릿과 오펠리아(1883)’,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의 형상을 한 (1899)’ 등 실존하지 않는 세계의 인물들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백조 공주는 의미가 남다른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이 그림의 주인공이 백조공주라는 허상의 인물이자 실존하는 그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새하얀 날개를 달고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이 여인은 모스크바에서 1900113일에 초연된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 황제 살탄 이야기에서 백조공주 역할로 분한 그의 아내, 오페라 가수 나제쥐다이다.

 

황제 살탄 이야기는 러시아의 국민 시인 푸쉬킨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동화시를 바탕으로 제작된 오페라이다. 브루벨은 이 오페라에서 의상과 악세서리를 담당해 스케치를 했고, 이후 이 스케치를 기반으로 오페라의 의상과 장식이 제작됐다. 일견 현실과 동떨어졌다고도 할 수 있는 신비주의에 한껏 매료된 상징주의 화가들은 오페라와 발레 등 극장 무대예술 분야에서 자신들의 상상력을 한껏 구현해 낸 것이다. 특히 브루벨의 미적 감각과 판타지적 상상력은 이 오페라의 예술 수준을 극대화시켰다. 브루벨은 그의 독창적인 작품세계와 화려한 색감으로 동시대 예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는데, 화가 코로빈은 브루벨, 그의 판타지에는 끝이 없으며 그만의 독특한 장식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아내 나제쥐다는 당시 오페라 가수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살탄 이야기뿐 아니라 예브게니 오네긴’, ‘파우스트등 현재까지도 공연이 이어지는 고전 오페라에 출연하는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브루벨은 오페라가 세상에 공개되기 전인 1900년 여름, 이 사랑하는 백조공주 아내의 초상화를 완성했다. 그림은 백조가 미녀로 변신하는 드라마틱한 순간을 포착 해 내었다. 상반신은 여인의 모습이지만, 등에는 아직 날개가 달려 있다. 감추고 있던 비밀을 들켜 놀란 듯이 반쯤 뒤로 돌린 얼굴과 손. 순백의 풍성한 날개 깃털은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며 여인의 아름다움을 드라마틱하게 극대화시킨다. 브루벨을 비롯한 상징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러시아 무대미술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의 풍부한 상상력은 작품 스케치로만 끝나는 경우도 많지만, 무대 위에서 실현 되면 음악, 문학, 연기와 어우러져 풍부한 종합예술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 강동·송파 주민의 대변지 ⓒ 동부신문 & www.dongbu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제보 dongbunews@naver.com